그제 꽂혀서 바로 시작해서 어제 끝냈다. 시스템은 기본적인 건 갖춰져 있으나 오토, 스킵이 대화창에 없어서 불편했다. 모니터가 작아서 못본 걸수도 있지만 전체 화면으로 해도 대화창에는 별다른 기능이 없었다. 스킵은 ctrl 누르면 되는 듯하나 아직 진행중일 때 스킵을 눌러서인지 원하는 만큼 넘어가지 않더라. 아니면 사실 넘어갔는데 찔끔찔끔 눌러서 못본 걸수도 있다. 오토 하려면 설정 들어가서 일일이 눌러줘야 했다. 마우스 스크롤을 통해 백로그 확인이 가능하고 스페이스바 누르면 대화창이 사라진다.
에그헤드와 ith를 쓰려고 했는데 텍스트를 끌어오지 못하길래 vnr을 처음으로 써봤다. 잘 되더라.
스토리는 집안 방침에 따라 일정 기간 독립해 수행을 해야 하는 주인공 스스하라 스즈무를 기다리던 친척 하루미야 츠바키코가 섬뜩한 백일몽을 꾸는 것에서 시작된다. 누군가 열차에 뛰어드는 장면이 처음이라니 이 게임이 범상치 않음을 단박에 알게 해준다. 스즈무는 츠바키코와 만나고 전학가서 잘 지내는 중 같은 반에 공기 취급되는 쿠로카미 토에에게 흥미를 갖고 접근하나 토에에게 알 수 없는 말을 듣고 만난 이후 이상한 꿈을 꾸게 되는데…….
시나리오 전반부는 일종의 문제편, 후반부는 해답편으로 나뉜다. 빈말이 아니고 과거편 진입하기 전까지는 각 히로인들의 기괴한 꿈을 보고 주인공은 죽고 끝난다. 이어서 하다 보면 뭐가 뭔지 모르겠다. 스토리 분기가 없는 일직선 구성인데 각 장의 대부분 끝은 알 수 없는 세계에서 히로인들에게 살해당하는 주인공이 살해당하는 것이고 거기에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분명 죽었던 인물도 살아서 돌아다닌다. 꿈이었던 건가 생각하게 되면서 과거편이 나오고, 히로인들이 받은 저주에 대해 조금씩 실마리가 던져진다.
이하 전체 스포일러
과거편을 통해 밝혀진바 저주는 결국 인과응보였다. 그 저주를 봉인할 산제물이 필요했고 외지인이 선택됐다. 산제물의 자손은 대대로 저주를 몸에 담아 왔다.
이렇게만 쓰면 강도가 낮아 보이는데, 진짜 까보면 인간의 추악함을 제대로 볼 수 있다. 탐욕으로 인해 마을에 재앙이 내리는데 그 재앙을 봉인한 방법이 가관이다. 앞서 말한대로 산제물에게 저주를 봉인한다. 산제물로 잡힌 사람은 그냥 외지인이 아니고 가뭄으로 굶주린 마을에게 신의 해답을 전해준 스즈노메라는 무녀였다. 여기까지만 해도 은혜를 원수로 갚은 거다. 그리고 산제물의 대가 끊어지면 재앙이 밖으로 나온다. 어떻게든 대를 이어야 한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마을 인간들이 스즈노메에게 제대로 된 혼사처라도 알아봐 줬을까? 그럴리가.
더군다나 스즈노메와 상사상애였으며 산재물로 하는 것에 반대한 젊은이 무츠는 마을에 대적하여 쫓겨나다시피 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스즈노메의 배우자가 될까?
마을 인간들은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 된다. 인도라는 것은 안중에 없다. 스즈노메를 가지고 놀고 그 자식에게도 같이 행하고, 수십 세대를 반복하다가 겨우 산제물의 위치가 '아가씨'의 위치가 된다. 더 이상 산제물이라 하기에는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저주는 봉인된 상태에서 누적되어 강해진다. 그걸 분산하기 위해 5쌍둥이를 만드는 작업을 시도했고, 그 쌍둥이들의 후손이 작중 히로인들이다. 한 명은 동아리 고문 선생님으로 히로인이 아닌 유일한 후손이다. 이들은 저주의 영향으로 백일몽을 잘 보는 체질이다. 현재 처한 상황, 과거 트라우마 등이 잔뜩 일그러져서 꿈으로 나타나는 것. 초반의 알 수 없던 꿈들은 결국 이들의 현실과 관련되어 있던 거다.
작중에서는 저주를 그을음이라 하는데, 현 시점의 무녀인 토에의 몸에는 그을음이 거의 한계치까지 쌓인 상태다. 봉인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그을음이 없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고 했다. 약혼자로 양아치가 선택된 이유는 몸에 그을음이 없어서라고. 그리고 스즈무에게는 왜인지 그을음이 많이 들어있다고 하는데, 스즈노메의 후손들 안에 있는 사슴신들은 그을음을 많이 모아 재앙을 앞당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므로 히로인들이 주인공에게 끌리는 이유에는 스즈무가 보유한 그을음 양이 한몫하는 듯하다. 물론 가장 끌리는 건 본가 사람이자 스즈노메 본인인 토에. 어째서인지 스즈노메는 죽지 못하고 계속 육체만 바꿔서 천 년째 전생하고 있는 모양이다. 스즈무를 받아들이면 재앙이 올 것임을 알아서 이성으로 어떻게든 몸을 억제하는 중이다. 이 설정에서부터 스즈무X토에는 막막해보였다.
중간에 빼먹었는데 히로인들 머리에 대뜸 녹용이 생기는 건 히로인들 안에 사슴신이 있어서이며, 그 사슴신은 과거 마을 인간들에게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다. 사슴신의 수장이 인간들에게 배신당하고 자기들도 배신당해서 저주한 것.
그리고 스즈무의 정체 말인데, 무츠는 스즈노메를 가둔 종을 부수기 위해 주먹을 단련하는 중 마을 인간들에게 도륙당한 사슴신 수장에게 천 년동안 수련을 하면 힘이 깃들게 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자자손손 단련하게 한다. 그리고 스즈무대에 이르러 천 년째. 거기다 스즈무는 무츠의 후손임과 동시에 그의 환생이었다. 더불어 그 안에 사슴신 수장의 힘이 깃들어 있어서 어떻게 보면 사슴신 수장이기도 하다. 스즈무를 보고 고문 선생은 자기가 네 여동생이라 말하기도 했고.
이 게임에서는 유독 천 년이라는 단어가 많이 강조된다. 당장 스즈무가 토에와 이상한 공간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화를 했을 때도 토에는 '10년 늦었어, 100년 늦었어, 1000년 늦었어'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냥 많이 늦었다는 듯 관용적인 표현이라 생각했는데 스즈노메와 무츠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만난 건 정말 천 년째인 것이다.
여차여차 히로인들에게 깃든 신들을 때려잡고 최종보스인 토에에게 가는데 토에는 저주를 품는 데 한계를 느껴 종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 스즈무는 최종보스와 싸우고 종을 부숴 토에를 구한다. 스즈노메의 천년지기 최종보스도 처리했겠다 그을음이 사라진 건 당연지사. 그리고 스즈무는 죽는다.
신의 힘을 인간의 몸이 견디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토에는 절규하는데 사슴신 수장이 말을 걸어오며 소원을 들어주겠다 한다. 죽은 이를 살리는 건 할 수 없다 하니 토에는 무츠와 스즈노메의 행복을 빈다. 단, 이들이 맺어진다고 해도 현재의 스즈무, 토에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한다.
과거 시점에서 종을 부수려는 무츠. 원래대로라면 부수지 못해 좌절하고 수행에 매진하게 되는 무츠지만 어째서인지 주먹에 힘이 깃들어 종을 부숴버린다. 그리고 무츠는 스즈노메와 해피엔딩. 그리고 저주를 받아들이고 신을 계속 경애해온 이들에게 저주를 내렸던 사슴신이 소원을 말하라 하는데, 자기에게 힘을 줬던 사람이 웃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현재로 돌아와서 스즈무의 장례식. 무츠의 소원으로 인해 죽었던 스즈무의 부활과 착실하게 여름을 즐기는 부원들. 방학 막바지에 스즈무에게 고백하기 위해 신사로 부른 토에. 여기에서 스즈무는 토에에게 너는 스즈노메냐, 토에냐 질문한다. 자기는 무츠의 기억이 있지만 아득하고 현재는 스즈무라는 것. 토에는 자기는 스즈노메이며 멋대로 스즈무와 무츠를 겹쳐봐서 미안하다고 한다. 스즈무는 자기는 무츠가 아니지만 스즈노메를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스즈노메는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스즈노메는 자기는 스즈노메지만 현재는 토에이기도 하니까 토에라 불러달라고 한다. 그렇게 드디어 맺어졌다 싶었으나 주인공 다시 사망.
이번엔 진짜로 죽은 거라 화장까지 다 했다. 동아리 존속에 대해 얘기하던 중 부원들에게 백일몽 현상이 나타나고 사라졌던 고문 선생과 스즈무의 귀환. 물론 살아 돌아온 건 아니고 백일몽으로 부원들 곁을 지키게 된 스즈무. 마지막에 스즈무와 토에가 포옹하지만 어딘가 씁쓸해지는 엔딩이다. 부원들과, 토에의 곁에서 쭉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도 결국 환상이 아니니까. 차라리 몇년 뒤나 몇 세대 뒤 환생으로 마무리지어도 되지 않았을까… 백일몽 엔딩이라니.
전체적으로 문제편은 기괴하기만 해서 그렇게 재미가 있지 않았다. 그나마 토에가 떡밥 덩어리로 보였기에 토에편은 흥미롭더라. 해답편 들어와서는 역시 개별 루트는 그다지 재미 없었다. 하나 잡을 때마다 스즈무가 레벨업하는 것만 생각난다. 여담이지만 스즈무는 정말 멋진 캐릭터이다. 진행하면서 한 메모에도 적었지만 남주 공략 게임이 아닌가 싶을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사랑이라는 주제가 가장 들어맞았던 건 역시 토에 시나리오로, 스즈노메와 무츠 사연까지 보니 더욱 행복을 빌어주고 싶던 부분이었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토에를 제외한 개별 루트들은 그렇게 흥미있지 않았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깔끔하게 문제가 해결된 셈이라 속시원한 감도 있다. 주인공 사망 엔딩은 용서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던졌던 떡밥은 거의 건진 것 같다. 많이 재미있었다. 당분간은 내용 정리 하거나 과거편의 무츠, 스즈노메 부분만 재플레이 할지도 모르겠다. 산제물 선택부터는 발암이니까 안 하고.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