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송받는 자 흩어져가는 자들을 위한 자장가, 거짓의 가면 번역을 보며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고유명사였다. 문장 구조나 다른 단어들은 우리말에 맞게 잘 바꿨다고 생각하는데 고유명사만은 마음에 들지 않더라.
아무래도 원문에서만의 느낌, 즉 제작사에서 의도했으리라 여겨지는 부분이 번역문에서는 사라져버려서 그런 것 같다.
두 명의 백황도 예외는 아니었다. 관직명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다 보니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전작에서 동궁부가 태사가 됐다느니 한 것은 정말 사소하게 생각해도 될 법한 번역문이 나왔다. 게임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원작을 한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신경쓰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이번엔 그 단어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이 글에서는 황과 왕이 혼용되어 있는데 전자는 원문(일본어판)을 언급할 때, 후자는 번역문(한국어판)을 언급할 때 사용했다.
시리즈 전편에 걸친 스포일러가 존재한다.
미코토(女皇)


두 명의 백황에서 새로 추가된 고유명사라고 하면 미코토(여황)가 있다. 오로(황)가 존재하는데 굳이 여황이라고 따로 만들 필요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투스쿨에서는 황을 오로/미코토로 나누어 부르는 듯하다. 후자의 경우 쿠온을 위해 새로 만들어진 지위가 아닌가 싶다.
캡쳐를 보면 미코토(여황)가 공주님으로 번역된 걸 볼 수 있다. 전작까지는 세계관의 고유명사는 루비문자로 단어 위에 뜻을 표기해왔다. 오로 위에 왕이라고 적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미코토는 처음 나온 단어임에도 통째로 공주님으로 번역하고는 별다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원문에서부터 가타카나인 미카도(ミカド)와 달리 원문에서 히라가나인 미코토(みこと)는 고유명사로 보기 보다 그 단어가 갖는 본래 일본어 뜻을 고려해야 겠다고 판단한 것일까. 문제는 미코토라는 단어가 단순히 공주의 지위만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었다는 것에 있었다.
이 단어에 대해 설명하려면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이었던 자장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스맨은 실험체 3510의 이름을 지어줄 때 그 발음과 유사하면서도 의미있는 단어인 미코토(ミコト=命)를 선택한다. 아이스맨과 미코토는 자장가 시점에서 하쿠오로와 에루루이기도 하고 그 미코토는 에루루의 직계 조상인 동시에 그녀의 전생이다. 또한 투스쿨 전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위찰네미티아 신앙에 있어서 대신(大神)의 반려인 미코토의 위치를 추측해 보면, 차기 왕이자 위찰네미티아의 천자라는 쿠온에게 미코토(みこと)라는 명칭을 붙인 것은 단순히 사전적 뜻만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으리라.
요약하면 투스쿨에서 미코토(ミコト, みこと)라는 단어는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그래서 그냥 번역해버린다면 1편(자장가)과의 미묘한 연속성을 놓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번역이 됐으니 어쩌겠는가. 원문을 안 보거나 굳이 발음을 찾아듣지 않는 한 문맥을 이해하는 데엔 지장이 없으니 오역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다.
진짜 아쉬웠던 것은 이 단어가 번역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번역된 결과물이었지.


한자를 보면 알겠지만 여기에서도 미코토(여황)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런데 번역문이 달라졌다. 위 장면 직전에 쿠온은 안쥬에게 '왕위 계승을 하느라 바빴다' 하고 말한다. 즉, 현재 투스쿨의 왕은 쿠온이고 그런 쿠온을 지칭하는 미코토라는 단어는 이제는 공주가 아니라 오로(왕)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최소한 이곳에서의 번역은 여왕 정도가 되어야 했을 것이다. 같은 고유명사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각각 다르게 번역한다는 게 조금 우습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번역된 결과물은 황제이다. 여기에서 2차로 당황하게 된다. 갑자기 황제라니?
황제로 번역한 의도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위 장면은 야마토와 투스쿨의 왕들이 한 자리에서 항구적인 평화를 선언하는 부분인데 한쪽을 여왕, 다른쪽을 황제라고 번역해버리면 왠지 투스쿨의 격이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기에서만 원문 그대로 여황으로 바꿔버린다면 그간 왕으로 번역해버린 다른 국가 캐릭터들 위치가 애매해지니 쉽게 손댈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런 기분 문제 때문에 투스쿨 및 야마토의 국가 형태를 무시해버리는 것을 괜찮다고 봐야하는지는 또 별개이다. 게다가 왕과 황제라고 했을 때 정말 두 나라의 격이 다른 것일까?
야마토의 미카도(황제) 질서는 야마토 내에서만 통용되는 것이지 야마토의 제국 체제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외국, 투스쿨은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국가 간의 외교가 동등한 위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안쥬가 투스쿨 왕녀가 왔을 때 같은 왕녀(원문에서는 皇女) 운운하며 대등하다고 말한 근거이기도 하다. 그 자리에는 다른 왕자, 왕녀들도 있었는데 안쥬가 이들은 명백히 신하로써 대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투스쿨이라는 외국의 왕녀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실제 역사를 참고한다면 중화 제국과 그 질서에 포함되지 않은 국가들의 외교를 생각해보면 되겠다.
'그래도 역시 격이 다른 것 같아!'라고 한다면 답은 하나뿐이다. 원문에서처럼 미카도, 미코토라고 고유의 왕명을 썼으면 문제가 없다.
길게 적었지만 결론은 미코토라는 단어를 그대로 쓰지 않고 상황에 맞춰 번역하다 보니 고유명사적인 느낌은 퇴색되고 은근한 맛이 없어져서 아쉽다는 것이다. 이미 번역이 되어 정발되었고 이 정도 내용에 대해 건의해봐야 패치로 수정해줄 리도 없으니 혹시나 칭송받는 자 시리즈의 후속작들도 정발된다면 명사 번역에 있어서 조금 더 신경써주면 좋겠다.
덤




이 부분은 일본판과의 사소한 차이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일본판에서는 제(미카도) 이런 식으로 한자어로 된 단어를 주 단어로 적고 위에 루비문자로 칭송받는 자 세계관에서의 단어(발음)을 적어두었다. 반면 한국어판에서는 칭송받는 자 세계관의 단어를 기본으로 적되 그 위에 뜻을 적는 것으로 바꿨다.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익숙한 단어 위에 작은 글씨로 생소한 단어를 병기한 일본어판이 가독성 면에서는 좋겠지만 한국어판의 장점은 그 세계관의 단어를 더 자주 접하고 익히게끔(?)하는 데 있겠다. 둘 다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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