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가을 바람이 기분 좋은 어느 날의 일이었다.
나는 레버러토리에서 책을 읽다가 무심코 앉아서 졸고 말았다.
전날 늦게까지 다음주에 할 예정인 강의 자료와 눈싸움을 했기에 수면 부족이었던 것도 있지만 살랑살랑 창으로부터 들어 오는 가을 바람이 나의 머리카락을, 뺨을 어루만져 가는 것이 기분 좋아서.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고 있다보니 나의 의식은 천천히 잠의 늪으로 떨어져 갔다.
잠시 후 체온이 내려가 조금 추워졌지만 그보다 이 꿈과 현실의 틈을 하늘거리는 쾌감을 좀 더 맛보고 싶었다.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일어나는 것이 아까워서 그대로 꾸벅꾸벅 졸고 있자 문득 바람이 멈추고 담요가 덮였다.
부드러운 담요는 가을 바람에게 체온을 빼앗겨 차가워지기 시작한 나의 몸을 부드럽게 감싼다.
누가 덮어준 것인가 같은 생각은 조금도 떠오르지 않고 그냥 담요의 촉감과 따뜻함을 느끼면서 이제 안심하고 잘 수 있다 생각하며 더 깊은 잠 속으로 떨어지려고 했다.
……그 때, 바로 근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리스……네가 전부 잊어도, 나는 잊지 않아"
레버러토리에 왔을 때부터 거의 매일 듣게 된 그 녀석의 목소리다.
"네가 준 말도, 눈물도, 키스도, 꼭 껴안은 신체의 온기도……"
하지만 지금 들리는 그것은 평상시의 밉살스러운 말투와는 달라.
"전부 기억하고 있다. 너와의 약속이니까……"
매우 상냥하고, 하지만 왠지 매우 안타까운 울림을 갖고 있어.
"아니, 약속 따위를 하지 않아도 잊을 리가 없는데"
언제나 적당히 말만 하는 녀석답지 않은 말을 계속 내뱉는다.
"너는 나에게 있어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니까"
뭐야 그런가, 소중한 사람에게라면 분명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비몽사몽인 채 느릿느릿한 사고 회로로 나는 생각한다.
그 녀석의 소중한 사람은 누구일까. 역시 마유리일까.
본인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어릴 때부터 함께였다고 하는 두 명 사이는 다른 사람이 끼어들 수 없는 인연 같다고 느껴 버리게 된다.
찡, 하고
조금, 속이 아픈 것 같던 그 때.
문득 가을 바람에 노출된 나의 차가운 뺨에 살그머니 뭔가가 닿았다.
접한 부분에서 서서히 열이 전해진다.
그 열에 끌려가는 것처럼 나의 의식은 천천히 각성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분명 오카베의 손. 그의 가는 손가락이 나의 뺨에 살그머니 올려져 있는 것이다.
'……응?'
아니, 잠깐 기다려.
어째서 오카베가 내 뺨을 만지고 있지?
사람이 자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무엇을 하려는 거야 이 BYEONTAE!?
황급히 일어나려고 해도 몸은 아직 각성하지 않았는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결코 오카베 손의 따스함을 더 느끼고 싶어 그런 것은 아니다. 결코 아니야.
열심히 일어나려고 마음 속에서도 몸부림 치는 내 귀에 또 오카베의 목소리가 들렸다.
매우, 매우 상냥한 소리가 말을 이어간다.
"계속 옆에 있어주면 좋겠어. 계속, 너의 웃는 얼굴을 보고싶어.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 세계를 적으로 돌려서라도 나는 너를 지킨다. 이번이야말로 너를 선택할거야……반드시"
아, 그
혹시 저에게 하는 말인가요?
그러고 보니 아까의 말도 처음에 '크리스'라고 한 듯한.
아~ 그것은 즉……?
'에에에에에에엣!?'
도출되는 해답에, 조금 전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급속히 의식이 부상한다.
뺨에 닿아 있던 그의 손이 떨어지자 나는 한껏 자연스러움을 가장 해 담요에 얼굴을 묻는다.
얼굴에 피가 올라 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히 지금의 나는 새빨간 얼굴을 하고 있다.
보일 수 없다. ……라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그는 내가 일어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채 다른 한 장 담요를 나에게 걸쳐주고 개발실 쪽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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