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의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을 무렵, 너는 내 연구실에 오지 않게 되었다. 아니, 오지 않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빈도가 줄어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와도 너는 계속 책을 탐독하고 있어서 대부분 대화가 없었다. 너는 무언가에 사로잡힌 것처럼 책을 읽고 노트에 문자를 써내려가며 고민하고, 문득 무엇인가를 생각해내서 기쁜 듯이 미소 지었다.
"레포트인가?"
"그렇습니다"
"주제는?"
"비밀"
너는 펜을 입가에 대고 후후하고 기분 좋게 웃는다.
"초안을 작성해서 보여 줄게요"
'그때까지는 비밀이에요' 라고 너는 말한다. 나는 어쩔 수 없구만, 하고 어깨를 움츠렸다.
그것이 나와 너의 결별의 신호였다.
나이를 먹어도 바보 같던 난 그것을 깨달을 수 없었다.
***
타임 트래블에 관한 논문의 초고를 완성하고 졸린 눈을 비비며 교수님의 집으로 향했다. 조금 티나는 부분은 엄마에게 부탁해 메이크업으로 감춰달라고 했다. 겨울 추위에 몸을 떨며 나는 머플러를 바짝 목에 휘감았다. 대각선으로 맨 작은 가방과 손엔 논문 초고를 넣은 클리어 파일을 들고 겨울의 길을 빠른 걸음으로 걸어 갔다.
교수님은 칭찬해 줄까. 물론 아직도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고 임시 방편의 지식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물리학 전공 교수님이라면 나와 다른 관점에서 지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교수님께 보여주고 납득할 수 있는 논문이 마무리되면 파파에게 보여줄 자신감도 붙을지도 모른다.
교수님의 집 앞에 서서, 나는 습 하고 숨을 들이마신다. 자신의 전문이 아닌 분야의 논문을 쓰는 것은 그다지 없는 경험이라 조금 긴장했다.
초인종을 꽉 누르자 삐 소리가 울린다. 대답은 없었다. 오늘은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하셨는데 혹시 주무시는 걸지도 모른다. 너무 빨리 온걸까, 휴대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한다. 확실히 다른 사람의 집을 찾아가기엔 이른 시간일지도 모른다.
"아, 그러니까, 열쇠, 열쇠……"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열쇠 구멍에 넣는다. 소리를 내지 않게 살그머니 문을 열어 들어가니 책상에 웅크린 뒷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또 책상에 엎드린 채로 잠이드신 것 같다.
나는 소파에 걸려 있던 회색의 타올담요(towelket)를 가져와 교수님께 걸쳐 주었다. 으응, 이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
교수님의 책상에는 자료와 책이 어질러져 있었다. 나는 소리를 내지 않게 그것을 바라 보았다.
그것들은 모두, 타임 트래블에 관한 자료였다.
"……, 응?'
"아, 안녕하세요. 교수님"
"크리스…?"
"네. 크리스입니다"
"……!!"
교수님이 내 존재를 깨닫자 책상 위에 있었던 자료를 모아 클리어 파일 안에 억지로 밀어넣었다. 그 동작이 매우 난폭하고 초조함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나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교수님의 어깨에서 타올담요(towelket)가 스륵 떨어졌다.
평소의 교수님이 아니다. 어딘가가 이상하다.
"교, 교수님……?"
그 모습에 나는 언젠가의 교수님을 떠올렸다. 그것은 내가 그에게 타임 트래블에 대해 처음으로 물었을 때다.
술렁술렁 가슴이 떨린다. 나는 교수님에게 타임 트래블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까? 또 그때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 그런 것을 이야기하냐고, 그런 눈으로 보지는 않을까?
만약 교수님이 파파처럼 나를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면?
"……아아, 미안. 크리스. 놀래켰구나"
"아, 아뇨……. 저야말로 마음대로 방에 들어가서 죄송합니다"
"내가 네게 열쇠를 줬지. 그것에 대해 화낸 것 같은 건 착각일 거야"
교수님은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안심한다. 또 평소의 교수님이었다. 부드럽고 온화한 눈으로 나를 봐주고 있었다.
"왜 그러니, 울 듯한 얼굴을 하곤"
"교수님이 무서운 얼굴을 하기 때문입니다"
"……미안하다"
잠시 토라진 체를 하자 교수님은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손에 든 클리어 파일을 입가에 대고 킥킥 웃는다. 교수님은 그것에 눈을 옮겼다.
"그건?"
"교수님께 보여드리려고 가져왔습니다. 여기에서 계속 쓰던 논문의 초안이요"
"내용은?"
"……타임 트래블에 관한 겁니다"
나는 주뼛주뼛 클리어 파일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교수님에게 전달했다. 교수님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냉정하게 내 논문을 받았다. 약간 슬픈 듯한 눈을 하고 내 논문을 그 주름이 많은 뼈가 드러난 손으로 천천히 받았다.
"……앉아서 기다리거라"
교수님은 책상에 다시 앉아서 내 논문에 홅어 보기 시작했다. 나는 교수님의 방해를 하지 않게 소파에 앉는다. 이미 몇번이나 여기에 않았을텐데 오늘만은 상당히 앉기 어렵다고 느꼈다. 긴장해서 무릎마디를 맞춘 채로 교수님의 옆 얼굴을 응시한다. 눈을 가늘게 뜨고 때때로 손가락으로 눈매를 누르면서 교수님은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논문을 읽어 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너무 조용해서 교수님의 시계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크리스"
교수님이 내 이름을 부른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교수님은 눈썹을 팔자로 만들어 나를 보고 있었다. 곤란한 얼굴. 조금 전 내가 토라졌을 때 보인 것보다 더 애절하고 더 괴로운 듯한 표정이었다.
"이것은 내게 보여주고, 어떻게 할 생각이었지?"
"전, 교수님의 의견을 들으려고 생각해서……:
"왜 나에게 보여주려고 했니?"
"……전에, 이 방에서 타임 트래블에 관한 낙서를 발견했습니다. 원래 타임 머신이나 타임 트래블은 아버지가 관심을 갖고 있던 거여서 저도 알아 보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가"
교수님은 살그머니 논문을 정돈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그것을 받는다. 손이 떨려 처음엔 잘 받지 못했다.
"내가 그것에 대해 할 말은 하나도 없다"
"그건 이 논문에 하나도 문제되는 게 없다는?"
"아니, 다르다"
"그렇다면 의견을 들려주세요!"
"할 수 없어"
"어째서……!"
"크리스"
소리를 높이는 나를 달래기 위해 교수님은 내 이름을 불렀다. 난 그냥 슬펐다. 교수님이라면, 이 사람이라면 상담해줄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줄거라고 생각했는데.
파파가 나를 멀리한 것처럼, 당신도, 나를 멀리하는 거야?
"전에, 네게 열쇠를 건네주었을 때 부탁을 하나 들어달라고 약속했지"
"……네"
"그 부탁을 지금 들어줬으면 좋겠다"
"뭔가요"
"그 논문을 버리고 내용을 잊어 줘. 향후 일절 말하지 마"
"……읏, 왜, 그렇게까지 말하시나요"
"듣지 않을 거면 열쇠를 돌려 줘. 그리고 두 번 다시 내게 오지 마"
뿌리치는 것 같은 한마디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손에 든 논문에 주름이 생길정도로 강하게 꽉 쥔다. 나의 논문인가, 교수님인가. 저울질해서 눈앞에 내밀어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질문에 답해 주세요, 교수님"
나는 교수님에게 묻는다.
"왜 제가 이 논문을 파기하길 바라나요. 그걸 가르쳐주지 않으면 전 당신의 질문에 답할 수 없습니다"
"――이기 때문이다"
나는 교수님의 말에 귀를 의심한다. 교수님은 일어난다. 나는 그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교수와 거리를 두었다.
지금, 교수님이 무슨 말을 하신 걸까.
"너는 이전에 내게 물었지. 만약 타임 트래블이 가능하면 어떻게 할거냐고"
교수님은 희미하게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교수님은 또 평소의 교수님이 아니게 되었다. 어딘가 기분 나쁜, 등줄기를 얼어붙게 하는 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한다.
"만약 정말 내가 타임 트래블러라면?"
교수님은,
"시간을 넘어 미래를 바꾸기 위하여 온 타임 트래블러로서"
교수님은,
"미래를 알고 있으니까, 네 손에서 그 논문이 완성되면 곤란할 테니까"
교수님은.
"그래서 그 논문을 파기 해달라고 한다면?"
……나는.
"타임 트래블 따위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나는 얼굴을 든다. 교수님은 변함없이 의도를 알 수 없는 애매하고 기분 나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지? 네가 그 논문에 적었던 것은 거짓말이었는가?"
"아니요. 전 물론 타임 트래블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논문으로 적어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 이론에 구멍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왜냐하면,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타임 트래블 따위, 그런"
입장이 바뀌었다. 나는 타임 트래블을 할 수 있다는 전제로 논문을 썼을 텐데 어느새 타임 트래블을 부정하는 입장에 서 있다. 마치 이렇게 교수님에게 유도된 것처럼.
"그럼 넌, 내가 타임 트래블러가 아니라고 단정 할 수 없는 것 아니냐"
"……그런 건, 악마의 증명이죠. 비겁해요"
"크리스. 나는 질문에 답했다. 이번은 네가 대답할 차례다"
교수님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가만히 바라본다. 주름이 보이는 노인의 손이다. 몇번이나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줬던 부드러운 아버지 같은 손.
"논문인가, 열쇠인가. 네가 부정하는 쪽을 내게 건내라"
그 손이 나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둘 중 하나를, 지금이 자리에서 선택하라고 강제하고 있다.
왠지 우스워졌다. 교수님이 칭찬해 줄지도, 라니. 그런 건 환상이었다. 단순한 나의, 편리한 망상이었다.
지금 여기서 논문을 건네주면 교수님은 지금까지대로 나를 받아들여줄 것이다. 나는 교수님의 집에 찾아봐 두 사람 분의 커피를 끓이고 교수님은 그것을 받고 나는 자신의 몫에 설탕을 두 개 떨어뜨린다. 오늘 하루의 일을 내가 말하면 교수님은 거기에 맞장구를 친다. 온화하고 사랑스러운 날들. 그런 지금까지와 같은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교수님의 손 위에 살그머니 그것을 올렸다. 똑바로 교수님을 본다. 교수님은 기분 나쁘게 웃는 얼굴을 그만두고 나를 보고 있었다. 또다시 평소의 교수님으로 돌아온 얼굴을 보고, 나는 참을 수 없어 입술을 꽉 물었다.
"아아"
나의 선택을 알고 있던 것처럼, 교수님은 미소지었다.
"너라면 그쪽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교수님은 손 위에 놓인 열쇠를 보면서, 슬픈 듯이 중얼거렸다.
"교수님"
"나가. 크리스"
"……"
"이제 다신 네 얼굴 따위를 보고 싶지 않다"
교수님은 내게서 등을 돌렸다.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일절 이 쪽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떨리는 손을 억누르고 그에게서 등을 돌려 걷기 시작한다. 울퉁불퉁한 힐의 소리가 마루에 울려 퍼진다.
나는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나는 이제 두 번 다시 이 장소로 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교수님. 전, 타임 트래블 따위를 인정하지 않아요"
교수님이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우고 이 쪽을 보았다. 그 눈에는 희미하게 눈물이 떠올라 있었다. 나도 한 번 코를 훌쩍였다. 흐르는 눈물 때문에 교수님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손에 가진 논문을 마음껏 마루에 내팽개쳤다. 공기의 저항을 받고 붕 춤추며 논문은 마루바닥에 퍼져 간다.
"당신이 타임 트래블러라면, 전 그걸 부정합니다"
나는,
"타임 트래블에 상정되는 이론을 모두 부정하고, 타임 트래블러라는 존재를 부정합니다"
나는,
"악마의 증명? 훌륭해요. 전 당신을 부정합니다. 당신이, ……타임 트래블러 따위가 아닌, 단순한 물리학 교수고 닥페를 좋아하고 내게 상냥하게 대해준, 이상한 아저씨라고"
나는.
"단지 '오카다 타로'가 여기에 있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교수님은.
"아아, 너 답구나. 크리스"
그렇게 말하고 교수님은 미소를 지었다. 내게 자주 보여주던 부드러운 미소였다.
나는 달리기 시작한다. 교수님의 집에서 뛰쳐 나왔다. 되돌아 보고 싶지 않았다. 돌아보면 후회 해 버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덜너덜 흐르는 눈물이 머플러에 흡수되어 차례 차례로 사라져 간다.
나는 달렸다. 계속 달렸다. 어디까지나 어디까지나 계속 달리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웅크리고 서게될 것 같았다.
이전까지의 오카다는 자신의 일인칭을 나(私)로 사용하고 있었다. 타임트래블에 관해 말하는 부분부터 나(俺)를 사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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