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 관계를 너무 무너 뜨리지 않게끔 말이야. 부탁이야. 그 충고를 남기고 그녀는 죽었다. 벌써 몇 년 전의 이야기이다.
결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응, ……큭, ……후에"
하지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네가 목소리를 억누르며 울고 있었으니까. 어깨를 떨며 모욕의 말을 필사적으로 견디고 있었으니까.
"……왜 울고 있는 건가"
경솔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들었는데, 인과를 왜곡해선 안 되는데.
그렇지만 나는 어떻든 너의 눈물을 간과할 수 없었다.
***
내가 그 남자를 만난 것은 열 다섯 살 때였다. 월반을 하고 대학에 들어가 몇 개월 경과했을 무렵,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혼자서 보내고 있었다. 왜냐하면 일본인이며 젊다는 것이 두드러져 자존심 강한 연구실 멤버와 타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연하인 내가 평가를 받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던 걸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로 달려들었다.
'흥, 너희들도 나보다 오래 연구실에 있는 습관을 가졌으면서도 성과 하나 올리지 않았잖아'
자존심이 강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멤버에게 아첨도 못하고 나는 오랫동안 혼자있는 것을 고집했다. 별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일본의 학교에 있을 때도 그랬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여도 괜찮고 실험도 교수의 허가가 있으면 할 수있다. 연구실의 멤버가 있든 말든 나에겐 아무래도 좋았다.
그 날은 강의를 마친 뒤 곧바로 연구실로 향했다. 스티커 투성이의 책을 가방에 가득 넣어뒀기에 조금 걷기 어려웠다. 비틀비틀 한 걸음씩 계단을 올라 연구실에 겨우 도착한다. 후우, 숨을 내쉬며 나는 문에 손을 댔다.
"그 녀석의 아버지 말야, 마키세 쇼이치였지?"
꿈틀, 하고 어깨가 떨린다. 어깨에 걸린 가방의 무게가 쭉 늘어난 것 같았다.
"어, 진짜?"
"그 사기꾼 아버지인가"
"이미 학회에서 추방되었어"
"그 녀석은 물리학 전공이 아니었나? 왜 그 녀석의 딸이 뇌과학을 전공하고 있는 거야"
"글쎄, 머리가 이상해진 파파를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다-같은 게 아닐까"
"후핫, 그러네"
"애초에 왜 저런 놈이 여기에 있는 거야. 솔직히 귀찮아"
"교수님을 유혹해 연구실을 독점하고 있는 거겠지. 정말 음울해"
"그 빈약한 몸으로? 무리겠지"
캬하하하,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천한, 질투와 업신여김으로 가득 찬 웃음소리였다.
나는 부들부들 분노로 몸이 떨리고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건 뭐야, 파파를 바보 취급하지 말라고. 게다가 나는 유혹 따위 하지 않는다. 순수하게, 그저 연구를 하고 싶을 뿐인데. 굳이 잘못한 것을 찾을 수 없다. 나는 계속 자신의 길을 확실하게 찾아서 걸어 왔다. 처음엔 파파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지금은 제대로 자신의 지적 호기심에 근거해서 행동하고 있어. 그래서 이 연구실에 속해 있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나는, 나는!
"후, 읏……"
시야가 떨리며 뺨에 뜨거운 것이 흘러가는 것을 느낀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연구를 하고 싶을 뿐. 여기에 있을 장소 따윈 필요 없어. 집에 돌아 가면 마마가 있는걸. 여기는 단지 연구를 위한 곳일 뿐. 그러니까 아프지 않다. 이런 건 괜찮아.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달라'
괜찮을 리가, 없다.
"응, ……큭, ……후에"
나는 그 자리에 웅크리고 얼굴을 가렸다.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처럼 소리를 지르며 울고 싶었지만 여기가 연구소 앞이라는 인식이 내 이성을 간신히 유지해주었다. 울면 저 녀석들에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바보취급될 요인이 만들어질 뿐이다. 지금 여기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약점을 보여선 안 되니까. 마키세 크리스로서, 연구자로서 여기에 서 있고 싶으니까.
"……왜 울고 있는 건가"
풀썩, 뭔가 큰 옷감 같은 것이 나를 덮은 것은 그 때다. 나는 눈물로 너덜너덜해진 얼굴을 조금 올린다. 주위로부터 내가 보이지 않게끔 커다란 흰색의 뭔가가 부드럽게 덮개처럼 걸려 있었다.
그것은 백의였다. 백의라면 나도 익숙해져 있지만 내것보다 훨씬 크다. 왠지 그리운 냄새가 난다.
"……파파?"
한때 파파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어서, 몇 번이나 파파에게 물리학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랐다. 그 하얀 옷자락을 잡아당겨, 저기 여기를 돌아봐줘, 호소했을 때 느낀 냄새. 그 냄새와 비슷하다.
"유감스럽지만 아니야"
백의 위로부터 툭, 하고 머리가 어루만져진다. 낮게, 목이 쉰 남자의 소리였다. 그 행동이 너무 상냥해서, 나는 한층 더 눈물샘이 느슨해져 고개를 숙여버린다.
남자는 달칵하고 문을 열어 젖힌다. 연구실에 있던 사람들의 소리가 딱 그쳤다. 남자는 나를 가리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실례. ――교수가 여기에 있다고 들었네만?"
"아, 교수님은 지금 외출 중이십니다만……"
"흠, 분명 이 시간의 약속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다시 잡아야겠군"
남자의 영어는 서투르고 발음도 조금 이상했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교수님이 오시면 전해드리겠습니다. 이름은?"
혹시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며 초조해하는 놈들은 바로 겸손해졌다. 그러자 그는 살짝 웃으며,
"질투와 멸시 밖에 할 수 없는 시시한 연구자에게 자칭할 이름은, 유감스럽게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대로 문을 닫았다. 나는 어느새 얼굴을 들어 그 남자를 보고 있었다. 남자는 백발 섞인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고, 큰 가방 하나를 손에 쥐고 있다. 나는 백의를 덮은 채로 느릿느릿 일어섰다. 툭, 하고 어깨에 걸려있던 짐이 떨어졌다.
남자는 내가 일어섰는 것을 깨달았는지 천천히 뒤돌아 보았다. 눈가에 떠오른 깊은 주름이 그의 삶을 말해주는 것 같다. 진정 부드러운 눈이었다.
"……당신은"
누구시죠, 라고 물으려 했을 때, 그의 눈가에 희미하게 눈물이 맺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매우 놀랐다. 창으로부터 들어오는 빛 때문에 하늘하늘 눈물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운 것을 볼 때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남자는 가만히 나를 보고있다. 그는 내 의아해하는 시선을 깨닫고 미안하다, 라고 말하고 눈가를 풀고 얼굴을 피했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는 한 번, 후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실례"
"아뇨, 저, ……고맙, 습니다"
"나는 연구실에 용무가 있었을 뿐이다. 그보다"
"네"
"그 모습, 마음에 들었나?"
"헷"
쿡쿡하고 웃는 남자의 시선을 쫓아 내가 그의 백의을 머리 위에 덮은채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뭐냐, 빨간 모자인가! 아니 하얀데!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당황하며 백의를 재빠르게 정리해서 남자에게 돌려줬다. 남자는 아직도 웃고 있었다. 주름진 손을 입가에 대고 상당히 기분이 좋은듯 웃었다.
"아니, 미안하다. 네가 ……옛, 친구와 닮아서"
남자는 백의를 받고 미소지었다. 그는 당황하며 백의를 치우느라 엉망이 된 내 머리카락을 살그머니 어루만져 원래대로 만들어주었다. 뭔가 아버지 같다. 파파가 아닌 아버지. 언어학에 그닥 흥미는 없지만 일본어가 와닿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