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다 타로는 한때 일본에서 이름을 날렸던 물리학자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다지 적극적으로 연구 활동은 하지 않고 때때로 의뢰를 받아 교편을 잡는 정도라고 한다. 이번엔 반학기만이라는 조건으로 이 빅토르 콘드리아 대학에 왔다고 한다. 영어에 약하기 때문에 정말 오고 싶지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확실히 그의 영어는 어딘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일본인인 그에게 흥미를 갖고 그의 집에 자주 방문했다. 반학기만의 계약이었기에 대학에서 교수용 방을 빌릴 수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집이 연구실 대신이어서 거기엔 그에게 의지하려고 오는 물리학도가 많았다.
"크리스, 여기에 있을 때는 일본어를 써라"
"왜죠?"
"집에서, 게다가 네가 있을 때까지 영어를 들어서는 숨이 막혀"
"그럼 제가 영어를 가르쳐 드릴까요"
"……33년 전이었다면 부탁했을지도 모르겠군"
오카다 교수는 열 다섯 살 여자애의 빈정거림도 가볍게 받아 넘겼다. 33년 전. 계산하면 1975년. 지금 51세인 교수님이 18세였던 무렵이다. 나는 고개를 갸웃한다. 그, 일본에서 영어 교육이 시작되는 시점이 그렇게 늦었던가.
나는 연구실에 가고 싶지 않을 때나 마음이 답답하고 개이지 않을 때, 교수님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교수님은 물리학 전공이 아닌 내가 빈번하게 그의 집에 다니는데도 싫은 얼굴 한 번 보이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열쇠까지 건네주었다.
"어, 이건 좀 서두르시는 거 아닌가요?"
"내가 돌아올 때까지 현관에 주저 앉아있는 것을 봤는데 건네주지 않을 수 없잖아"
"귀중품이라든지, 그런 게 위험하잖아요……. 제가 가져가면 어떻게 해요"
"네가 그런 일을 할 리 없지. ……그래, 그렇게 신경이 쓰인다면 다음에 한 번, 내 부탁을 들어다오"
"부탁, 입니까?"
"그닥 어려운 부탁은 아니야. 너의 성격부터가 그런 조건을 거는 편이 기브 앤드 테이크(give & take)가 되어서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을 뿐이다"
"……잘 아시네요"
"뭐 그렇지. 아아, 서재의 책은 마음대로 읽어도 된다. 네 전공과 관계된 책도 어느 정도는 있으니"
"네? 교수님은 물리학 전공이 아닌가요?"
"친구가 뇌과학을 전공하고 있었어"
교수님이 왜 나를 거기까지 신뢰해 주었는지. 나는 결국 물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에서 자주 나오는 것이 그 '친구'였다. 그 사람은 뇌과학을 전공했고 나와 외관이 비슷하다고 한다. 지금은 어디에 있나요, 라고 물었으나 글쎄, 하고 애매하게 얼버무렸다.
교수님 자신의 방에 있는 서재엔 수는 많지 않지만 이 쪽에서는 좀처럼 입수할 수 없는 일본어로 된 책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아, 있다!"
인터넷으로 남몰래 그의 경력을 조사하면서 과거에 어떤 인물과 함께 책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서재를 조사하자 그 책은 시원스럽게 발견되었다. 종이는 조금 오래되어 색이 바래있었지만 책 뒷표지엔 확실히 그의 이름이 실려 있다. 그러나 기록된 이름은 한 개가 아니다. 공저인니까 당연하다.
"하시다 스즈, 인가"
그와 함께 인쇄된 이름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이름으로부터 추측건대 아마 여성 일 것이다. 그러나 성이 오카다가 아니라는 건, 부인은 아니었다는 건가.
"어떤 사람일까……"
페이지를 넘겨 읽었다. 내용은 그가 지금 대학 강의에서 가르치는 것을 보다 전문적으로 다룬 것이었다. 나는 그 책을 가지고 방으로 이동했다. 딱딱한 의자 말고 소파에 앉아 독서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기 집인 마냥 커피 메이커의 스위치를 누르고 소파에 앉았다. 커피 메이커가 부글거리는 소리를 배경 음악으로 하고 교수님의 책을 대충 훑어본다. 아버지의 이론과의 차이나 반대로 같은 부분을 찾았다.
달칵하고 문이 열리자 책으로부터 얼굴을 든다. 현관 쪽을 들여다 보니 교수님이 비닐 봉지를 가지고 거기에 서있었다.
"뭐야, 와있었나?"
"어서 오세요, 교수님"
"다녀왔다. ……그리운 책이구나"
교수님은 내가 가지고 있던 책이 무엇인지를 곧바로 알아차리고는 그리운 듯이 미소지었다.
"저 교수님, 이 하시다 스즈라는 사람이 교수님이 말한 '친구'?'"
"아니. 녀석도 나와 같은 물리학 교수였어"
"흐~응……. 혹시 연인이었나요?"
가벼움을 가장하며 물어 보았는데, 교수님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크게 웃었다.
"그런 끈적한 관계는 아니었지"
"단순한 동료?"
"운명공동체다"
"운명공동체?"
로맨틱이랄까, 로맨틱를 넘어 비현실적인 교수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떤 것을 하기 위해 운명을 같이 했어. 뭐 절반 이상은 그 녀석의 간호였지만"
"간호? 몸이 좋지 않았나요?"
"장기 기억상실이었지"
"기억상실!?"
"큰 소리 내지 마. 뭐, 어떻게든, ……스즈는 기억을 되찾아 숙원을 이뤘지"
"하시다 교수는, 지금 일본에?"
"죽었다. 지금부터 대략 8년 전일까"
조금 쓸쓸한 듯한 목소리를 하는 교수님을 보고 나는 책을 껴안고 자신의 경솔함에 대해 부끄러워했다. 슬금슬금 사적인 영역에 발을 디디면 교수님도 기분이 좋지 않겠지. 교수님은 그런 내 모습을 알아차렸는지 탁하고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커피 물은 아직 끓이는 중인가?"
"아, 이제 다 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가"
교수님은 말없이 커피 메이커에 다가가서 두 잔의 커피를 탔다. 하나는 블랙, 또 하나엔 설탕을 두 개.
교수님이 커피를 끓여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항상 먼저 왔던 내가 멋대로 두 잔을 끓였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책상에 앉아 이쪽에 등을 돌린 채로 내가 커피를 끓이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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