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유리도 스즈하도 잃지 않으려고 나는 이틀간의 루프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내 마음을 닳게 하며 조금씩 제정신을 앗아갔다.
"나와 함께 가자"
그런 날 알아차려 손을 뻗어 준 것이 스즈하였다. 가라앉아 간다고 느끼던 세계가 색을 되찾고 나의 마음은 간신히 현실에 묶였다.
"오카베 린타로"
"……왜 그래?"
"……역시, 남은 게 있어"
"뭐가?"
그것은 타임 트래블을 할 예정일 저녁의 일이다. 석양이 잘 보이는 라디관의 옥상에서 스즈하는 내 손을 바짝 당긴다.
"타임 머신을 하시다 이타루와 수리하면서 계속 생각했어. 만약 8월9일, 너희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 타임 트래블을 하게 되면"
움찔하고 나는 어깨를 떤다. 설마 그녀가 알고 있나하고 생각했다. 스즈하가 8월9일에 타임 트래블을 한 경우. 즉, 내가 D 메일을 받 스즈하를 미행하지 않았던 세계선. 비 때문에 타임 머신이 고장나지 않고 그녀가 '실패'하지 않았던 세계선.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스즈하에겐 리딩 슈타이너가 없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의 이야기다.
"나는 분명 후회했을 거라고 생각해. 너희들이나 점장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과거로 날아가 버린 것이 돌처럼 마음에 계속 걸릴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네게 랩은 정말 소중하지? 겨우 며칠을 함께 했던 나도 그래"
"……"
"그러니까 적어도 랩멤버에게만은 제대로 전부 설명하자. 타임 머신을 고쳐 주거나 아버지를 찾는 것을 도와 준 모두에게 아무 말도 없이 가 버리는 건 정말 도망이라고 생각돼"
스즈하는 하나 하나 말을 고르고 있었다. 아직 아물지 않은 내 너덜너덜한 마음을 자신이 실수로 참견하지 않게끔. 하지만 내가 후회하지 않게 신경쓰며 진지하게 말한다. 어느 쪽일까 하면 호쾌한 타입인 그녀가 이렇게 감싸듯이 나를 설득하려는 것이 조금 의외였다. 어쩌면 이것이 여성이 본래 가지는 모성이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기다려, 나, 랩멤버 모두를 불러 올게"
내가 만류할 틈도 없이 스즈하는 뛰쳐 나간다. 그 발소리와 겹치듯이 쾅하고 라디관의 옥상 문이 열렸다.
연구만 하다보니 운동엔 익숙하지 않은 몸으로 라디관의 계단을 뛰어 올라왔기 때문일까. 어깨로 크게 숨을 내쉬면서 상기된 얼굴로 스즈하, 타임 머신, 마지막으로 나를 본다. 언제나 완고하게 치켜 올라간 눈은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울 것 같이 비뚤어져 있다. 입을 へ자로 한채 손에는 내 편지를 움켜쥔 채로 너는, 나를 보고 있다.
그런가. 타임 트래블을 하면 아오모리에 가자는 약속을 깨게 된다.
"오카베…"
네가 내 이름을 부른다.
나는, 거짓말쟁이었다.
***
"사정은 전부 모두가 모이면 설명할게. 그때까지 오카베 린타로를 붙잡고 있어. 나는 다른 랩멤버를 데려올게"
아마네 씨는 내 옆을 지나가면서 매우 작은 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오카베 린타로를 비난하지 마. 과거로 가자고 한 건 나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아마네 씨는 나를 한 번 보고 나서 가볍게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오카베는 어딘가 지친 얼굴로 타임 머신 바로 옆의 잔해에 걸터앉아 있다.
며칠전부터 오카베의 모습이 이상했다. 눈은 속이 빈 채 축 늘어져 있고 언동도 위화감이 있었다. 사이클링도 그랬다. 오카베가 타임 리프 머신을 만들자고 했는데 그것을 늦추는 듯한 이벤트를 꺼내다니 전혀 그답지 않았다.
어째서 나는 그 위화감을 걱정할 수가 없었을까. 타임 리프 머신을 만드는 데 열중해서 그가 가까운 미래에 다가오는 마유리의 죽음과 자신의 D 메일로 인해 일으킨 아마네 씨의 자살에 고민하며 타임리프를 반복하고 있던 것을 깨달을 수 없었다. 타임 리프 머신을 만든 건 난데. 오카베가 구제의 희망을 보게끔 장치를 만든 것은, 나인데.
내가 다가가면 오카베는 어두운 눈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타임 트래블을 한다는 거, 정말이야?"
의도하지 않게 목소리가 떨린다. 손 안에서 오카베가 내게 보낸 편지가 구겨지는 것을 알았다. 오카베를 비난하는 것 같은 어조가 된 것을 나는 약간 후회했다.
"……그래"
작은 바람이 불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애잔한 목소리였다.
"편지에도 적혀 있었지. 13일 밤에 마유리는 죽는다. 어떻게 발버둥쳐도 바꿀 수 없는 미래에서 마유리는 죽어버린다. 하지만 스즈하가 타임 머신을 타고 혼자 과거로 가면 기억상실에 걸리고 그 결과 스즈하는 자살해 버린다. 그래서 나는 이 이틀간의 타임리프를 반복하여 그 현실에서 도망치려고 했다"
마치 용서를 비는 것처럼 오카베는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했다.
"하지만, 이제, 무리다…"
오카베는 가만히 자신의 손바닥을 보면서 그 손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는 것처럼 피고 오므렸다.
"이제 견딜 수 없다. 같은 일상의 반복에서 그것을 나만이 알고 있고 미칠 것 같았다"
나는 조심조심 오카베에게 다가갔다. 한 걸음의 거리가 길게 느껴진다. 오카베까지의 거리는 이미 메울 수 없을 만큼 멀리 끝이 없는 것이 되어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난 스즈하와 함께 과거로 간다"
분명 나로서는 말릴 수 없다.
더 이상 힘내라고 말할 수 없다.
타임리프를 한번도 한 적이 없는 내게 이 이틀간을 이렇게까지 반복한 오카베를 막을 권리 따위는 없었다.
좀 더 빨리 깨달았다면 무언가가 바뀌었을까. 그를 설득할 수 있을 정도의 강한 의지를 가지고 그의 이변을 눈치챌 수 있었을까.하지만 그것도 이제와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눈 앞에 있는 피폐해진 타임리퍼에게 더 이상의 절망을 강요하는 것을 나는 할 수 없다.
누구와도 고민을 공유할 수 없다. 그래서 오카베는 이렇게도 고독하게 지쳐있다.
나는 한 걸음씩 오카베에게 다가갔다. 다리와 손, 온몸이 긴장해서 잘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앞으로 몇 센치 남은 거리까지 가까워지자 오카베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기미가 희미하게 떠올라 있는 눈매나 하늘하늘 흔들리는 약한 눈동자의 색에 나는 말을 잃는다. 빠끔빠끔 입에서 공기가 흘러 다시는 돌아오지 않게 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숨을 삼키고 오카베의 뺨에 살그머니 손을 포갠다.
나는 찰싹하고 오카베의 뺨을 느슨히 쳤다. 손가락 안쪽이 여름 볕에 이상하게 마른 오카베의 피부에 접하자 얼얼하게 아픈 느낌이 들었다. 힘 조절을 했기에 아플 리가 없는데, 그런데도 아팠다.
"……아오모리"
내 말에 오카베의 눈이 또 흔들렸다.
"아직 아오모리, 가지 않았어"
거짓말쟁이, 라는 말도 안 되는 목소리로 나는 오카베를 비난한다.
"미안하다……"
"함께 간다고 약속해준 주제에"
"미안하다, 크리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찰싹, 찰싹하고 오카베의 뺨을 두드린다. 오카베는 저항하지 않고 그냥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할 뿐,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나는 오카베가 없어져 버리는 외로움을 그를 탓하는 것으로 해소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얕은 생각 뿐, 배려가 없었다. 말하지 않고 있어도 되는데 일부러 말했으니까.
"미안, 감정적으로 되었네. 지금 건 잊어"
"미안하다, 크리스……. 미안, 정말로"
"됐어. 이제 사과하지 마"
나는 가능한 한 부드럽게 미소지으려고 했지만 잘 할 수 없어서 슬퍼졌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친 그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과거로 간다면, 약속해"
나는 두드렸던 오카베의 뺨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오카베는 멍하니 고개를 갸웃한다. 외모에 반해 어울리지 않은 그 태도는 아이 같고 왠지 귀엽게 보였다.
"반드시 IBN5100를 손에 넣어. 뒤는 우리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미련과 후회와 불안을 조금이라도 없애주는 것이 아닐까. 이런 말로 모든 게 둥글어질 만큼 단순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 말 없이 그를 배웅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면 오카베가 랩에 있을 동안 손에 들어 오도록 준비해주면 좋겠어. 워낙에나 세계선의 변화를 관측할 수 있는 것은 오카베 뿐이니까. 아니, 그게 아니면 당신이 과거에 IBN5100를 손에 넣은 순간 세계선이 바뀌고 우리의 눈앞에 IBN5100가 나타나는 걸까"
"크리스"
오카베는 나의 팔을 꽉 붙들었다. 내가 말을 멈추면 오카베는 한층 더 강하게 손끝에 힘을 집중한다. 팔이 아파, 정도를 알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약간 참아 주기로 했다.
"왜 그렇게 냉정한 거야"
"이게 내 성격"
"왜, 나를 탓하지 않지?"
"당신을 탓해도 현재의 상황은 바뀌지 않아"
평소의 말투로 대답하자 오카베는 그렇지 않다고 약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나는 도망치고 도망치고 도망치고 계속 도망치고"
오카베의 떨림이 손끝을 통해 내 팔에 전해져 온다.
"또 도망치려 하고 있는데?"
마치 혼날 것을 각오하고 있던 아이 같았다.
"당신, 타임리프를 반복하더니 상당히 부정적이게 되었구나"
나보다 훨씬 덩치 큰 이 남자가 작은 아이가 되어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오카베 앞에 무릎을 꿇고 오카베에게 잡힌 것과 반대인 손으로 오카베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어설프게 뒤로 넘겨진 더부룩한 머리가 내 손가락에 걸려 흐트러져 간다.
"달라. 도망치는 게 아니야. 오카베는 전진을 선택한 거야. 오카베는 현재의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정체를 그만두었어. 그건 틀림없는 전진이지 도망치는 게 아니야. 두 개의 선택사항 중에서 해답을 찾지 못했으니 세 번째 새로운 대안을 찾아냈을 뿐"
나는 그의 선택을 부정하지 않는다. 나 자신의 외로움은 꽉 눌러 숨겨 버리자.
"목적이 있는 선택은 절대 무의미하게 되지는 않아. 방금 내가 말했잖아.「반드시 IBN5100를 손에 넣어」라고. 그것을 완수하지 못하면 단순한 도망치기지. 그러니 완수해"
강한 어조로, 강한 말로 말한다. 그가 앞을 향해 걸어갈 수 있게.
"당신의 전진을 나는 이 장소, 이 시간에서 지켜봐 줄게. 그러니, 다녀와. 오카베"
갑자기 오카베의 팔의 힘이 강해진다. 깨달았을 땐 내 몸은 오카베에 끌려가 어중간하게 일어나난 채로 오카베에게 꽉 안겨 있었다. 오카베의 턱이 나의 어깨를 꾹꾹 눌러 약간 아프다. 등을 감싼 팔은 떨리는데도 강하게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귓가에서 오카베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몸을 조금 움직여 자신의 팔을 오카베의 등에 둘렀다. 아이를 어르듯이 팡, 팡하고 그 등을 두드렸다. 아이를 어른 경험은 없어서 잘 할 수 있었는지 몰랐다.
"……있지, 오카베. 하나만 더. 이건 약속은 아니고 단순한 부탁인데"
"뭐야, 말해 줘. 뭐든지 들을게"
"솔직한 당신이라니, 왠지 신선하네"
아플만큼 안긴 채 나는 오카베의 어깨에 뺨을 대었다.
"만약, 만약말야. 과거의 나를 만나게 되면 말을 걸어줘"
이번엔 내 쪽이 강하게 오카베에게 매달린다.
"분명 꼬여있어서, 귀엽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친구도 적고 프라이드만 높고 전혀 귀엽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강한 척 항상 혼자 있다보니 상당히 외로웠어. 그러니까 만약 그런 나를 보게 된다면……필요 이상이 아니어도 좋아, 그저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말을 걸고 이야기를 해 줘"
"……너는 외톨이 탈출을 타임 트래블을 하는 내게 부탁하는 건가"
"외톨이라고 하지 마!"
갑자기 평소의 상태로 돌아온 오카베에게 발끈해 나는 오카베의 등을 안은 팔로 오카베의 어깨를 팍 두드렸다. 시원한 소리가 나자 오카베가 아픔에 눈을 찡그린다. 꼴 좋다고 혀를 내밀고 있자 오카베는 나를 끌어안은 채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약속한다. 반드시 네게 말을 걸어주지"
이제, 그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응. 고마워, 오카베"
"고맙다 해야 하는 건 이쪽이다. 이것으로 결심했어"
살짝 팔의 힘을 느슨하게 하고 나는 오카베로부터 몸을 떼었다. 오카베는 똑바로 나를 보고 있다. 생기가 돌아온 희망이 보이는 눈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드시 IBN5100을 손에 넣는다. 하는 김에 네 외톨이도 해소해 주지"
"그러니까 외톨이라 하지 말라고 하잖아"
"아팟, 휴대폰으로 때리지 마라 휴대폰으로"
이마를 보호하며 과장스럽게 불평하는 오카베를 보고 나도 미소를 흘린다. 이별이 축축하게 되는 건 싫다. 이런 식으로 불평하며 싸우는 쪽이 줄곧 우리 두 명에게 잘 어울린다.
외로움을 꽉 감추면서 쓸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그를 사랑하기 때문일까 하고 생각했다. 확실히 이 녀석은 중2병에 BYONTAE로 사람에게 이상한 별명뿐 붙이는 화가 치미는 남자다.하지만 이상하게 동료를 생각하고 나와도 대등하게 말싸움하고 '부탁'을 받아줄 것 같은 상냥한 사람이기도 하다.
좋아하게 되어도, 뭐 괜찮겠지. 영광이라고 생각해라, 이 동정놈.
그렇지만 그것을 말하는 것은 그만두려고 했다. 모처럼 그가 이렇게 목적을 가지고 타임 트래블을 하려고 하는데 미련이 되는 것은 하고싶지 않다.
"크리스, 나는 너와 만나서 즐거웠다. 그리고 너와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나도. 당신의 랩에서 보낸 매일은, 정말 즐거웠어"
조금씩 몸이 떨어져 나와 오카베 사이에 틈이 생긴다. 이것은 이제 영원히 메워지지 않는 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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