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결혼한지 10년 이상이 지났고 아이도 있는데 성으로 불리는 남편이라……. 좀 불쌍하네"
"그러게"
그것이 몇시간 전, 식당에서 오늘의 추천 메뉴 돈까스 카레를 우물거리고 있었을 때의 대화다. 나는 이 대학의 교수 중에서도 '이상하다' '이상하다' '중2'라는 평판… 평판? 의 오카베 세미나 소속 학생이다. 대학에 들어가 4년째, 마지막 순간에 이 녀석의 세미나로 괜찮을까,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을까라며 일말의 불안을 느끼면서, 다른 교수에게 이제 와서 빌붙을 수도 없었으므로 결국 그를 사사하기로 했다. 뭐, 오카베 교수는 꽤 좋은 사람이다. 행동과 언동은 저래도.
"안녕-"
세미나실에 노크하고 들어가자 같은 오카베 세미나 소속인 어떤 여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눈을 깜빡이고 나서 마침 병째로 마시고 있던 닥페로부터 입을 떼고는 한 손을 들었다.
"안녕. 오랜만"
"넌 변함없이 틀어박혀 있구나……. 그보다 그건 교수님의 닥페 아냐?"
"이건 내꺼. 그쪽 자판기에서 뽑았어"
"이 세미나실의 닥터 페퍼리안 비율은 이상하네"
"교수님이 자주 맛있게 마시니 그만 손을 대버린다니까. 한 입 마시고 나면 이제 됐다고 생각하는데"
휙휙 리포트 용지를 넘기는 그 녀석의 손에서 닥페를 빼내 입에 댄다. 같은 학년이다보니 이 녀석과는 구면정도는 아니고 사이가 좋다. 그녀는 나를 살짝 보고 '그거 줄테니 다음에 한턱 쏴'라지만 수지가 안 맞는 거래이므로 묵살한다. 게다가 닥페는 역시 내 입엔 맞지 않았다. 이런 건 두 모금으로 충분하다. 교수님은 왜 이런 걸 벌컥이며 마시는 건지. 이해를 못하겠다.
"교수님 아직 오시지 않았지?"
"응. 좀 더 있다 오실걸"
"너 졸업 논문 얼마나 썼어?"
"아직 절반정도…. 좀처럼 진도가 안 나가. 넌?"
"나도 비슷해"
"역시 어렵네-"
서로 우울하게 한숨을 토했을 때, 똑똑하고 문이 두드려졌다.
"네, 네. 들어오세요"
노크한다는 건 손님이겠지 생각했는데 내가 미닫이문에 손을 대기 전에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오카베 린타로 있니?"
"아, 크리스 씨잖아요!"
불쑥 그녀는 일어서서 나를 밀치고 그 사람――, 오카베 크리스 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엣, 뭐야 너 이 유명인과 아는 사이냐, 이상하네? 게다가 왠지 친근한게 치사하다고.
"오랜만이네. 전엔 고마웠어"
"아뇨아뇨, 기억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오늘은 무슨 일인가요?"
"다음 달에 이 대학에서 강연을 하게 되어서. 오늘은 협의하는 김에 우리 남편을 주워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지금은 강의중이었구나"
"남편의 일정을 파악하고 있군요. 좋은 아내네요- 교수님은 정말 사랑받는군요-"
"으, 트, 틀렸어! 맞벌이를 하니까 일정을 파악하고 있는 편이 가사라든지 분담하기 쉬워서! 절대 만날 시간을 만들기 위해 기억하는 게 아니니까"
"……헤에-"
……이게 뭐야, 이 사람 정말로 오카베 크리스인가? 잡지나 미디어에서 다루어지는 모습과 너무 다른 그 사람을 보고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하지만 확실히 얼굴은 오카베 크리스다. 교수님 책상 위에 있는 사진으로 몇 번이나 본 적이 있다.
여담이지만 교수님의 책상 위의 사진은 세 종류가 있고 대개 1주일마다 바뀐다. 그리고 그 세 가지의 사진에 반드시 찍혀 있는 게 눈앞의 이 사람, 오카베 크리스다. 때문에 이 세미나의 학생은 10대, 20대, 30대의 오카베 크리스의 모습을 알고 있다. 아내 바보도 적당히 하라고 말하고 싶다.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 거야 신통치 않는 수염 아저씨 주제에.
오카베 크리스는 벌써 서른을 넘었지만 나이에 비해 상당히 젊어보였다. 외모가 전부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교수님이 홀딱 반한 것은 납득할 수 있다. 어떻게 그 교수님이 이런 미인을 잡은 건가. 솔직히 그쪽에 대해 차분히 강의해주면 좋겠다. 녀석의 평소 강의 내용보다 훨씬 가치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당신도 이 세미나의 학생?"
갑자기 화제가 바뀌어서 나는 움찔하고 어깨가 굳어졌다. 뭐랄까 미인이 웃어주는 경험이 지금까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카베 크리스입니다. 남편이 언제나 폐를 끼쳐서 미안해"
"아, 아뇨, 천만에요"
"너 왜 긴장하는 거니? 캐릭터가 다른데?"
"시꺼! 이런 미인이 눈 앞에 있으면 긴장하지!"
무심코 본심이 입 밖으로 미끄러져 나와 버린다. '난 연상을 좋아한다고!'라는 한 마디가 가까스로 목이 걸려 나오지 않아 다행이다.
오카베 크리스는 나의 한마디에 멍하니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연상의 여유를 보이며 쿡하고 웃었다. 그러나 그저 조금 수줍어하는 얼굴로 수줍게 '고마워'라고 했다. 그 웃는 얼굴을 찍게 해달라며 머리를 숙이고 싶었다. 솔직히 정말 좋아합니다. 젊은 제비가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나는 실물로 보는 오카베 크리스에게 홀딱 빠져버렸다. 더 빨리 태어났으면 하고 절실히 생각했다.
"교수님이 올 때까지 천천히 기다려주세요. 음료 내드릴게요-"
"아, 아니, 괜찮아. 그보다 만약 당신이 있었으면 하고 다과를 사왔어. 괜찮다면 먹지 않을래?"
"괜찮나요? 만세! 크리스 씨 정말 멋져!"
"과장은. ……당신도 괜찮다면 모쪼록"
"네, 네에. 잘 먹겠습니다"
오카베 크리스는 미인이라 걱정된다. 더욱 더 교수님 따위와 결혼해버린 게 의문이다.
나는 곧바로 세미나실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세 명이 앉을 공간을 확보한다. 파이프 의자를 꺼내 그 위에 방석을 깔아 오카베 크리스를 위한 VIP석을 만든다. 다과를 올릴 수 잇게 접이식 미니 테이블도 꺼냈다.
"넌 테이블 닦아. 음료는 내가 준비할 테니"
"왜 그래? 그렇게 약삭빠르게 굴다니 너답지 않아"
"됐으니까 움직여. 크리스 씨를 기다리게 하면 안 되지"
"오키도키"
바로 행주를 가지고 와서는 '크리스 씨 이리 오세요'라며 의자로 안내하는 그 녀석을 피하면서 나는 냉장고를 열었다. 여전히 닥페 뿐이다. 누가 저 교수님에게 닥페 이외의 음료의 맛좋음을 가르쳐 주면 좋겠다.
"저 나가서 음료 사올게요……"
"아아, 정말로 괜찮은데. 굳이 부탁한다면 닥페라도"
"아, 그러니까, ……크, 크리스 씨도 닥페 좋아하세요?"
"본고장에서 자랐으니까"
나 같은 애송이에게 '크리스 씨'라고 불려도 신경쓰지 않는다. 거기다 '닥페로 됐다'고 말하며 배려해준. 연상 최고, 유부녀 최고. 교수님께 질리면 저와 놀아달라며 무릎을 꿇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종이 컵을 세 개 꺼내 닥페를 가득 따라서 두 명의 곁으로 돌아간다. 오카베 크리스가 가져온 다과는 마들렌이라 정말 품위있는 느낌이었다. 약삭빠르게 오카베 크리스 가까이 앉은 놈은 '맛있어요!'라며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그녀는 생긋 '다행이다'라고 미소지었다. 나도 주저하면서 마들렌을 갉아 먹었다. 정말 맛있다. 인생 사상 최고의 마들렌이다.
그리고는 우리 둘이서 오카베 크리스에게 교수님에 대해 듣거나 반대로 물으면서 보냈다. 그러나 오카베 크리스는 우리가 얼마나 물어도 '어떻게 오카베 교수님과 만났는지'에 대해서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으-응, 그럼 고백은 누가 한 건가요?"
"오카…… 남편 쪽, 이었나? 벌써 꽤 된 일이니까 애매해. 더욱이 옛날엔 원거리 연애를 해서"
"원거리 연애?! 우와-대단해! 그치만 크리스 씨 결과적으론 이쪽으로 오셨잖아요? 그건 왜인가요?"
"확실히 최신 연구에 몸을 담그는 것도 매력적이었지. 그렇지만 지금은 네트워크도 충실하니 미국에라도 가려고 생각하면 갈 수 있어. 게다가"
오카베 크리스는 살짝 미소지었다. 나는 그 미소를 본 적이 있었다. 물론 교수님의 책상 위의 사진으로다. 교수님과 외모가 닮은 아들과 오카베 크리스를 꼭 닮은 딸이 함께 찍혀있는 한 장의 가족 사진. 누구나가 부러워하는 '화목한 가족'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한 오카베 크리스다.
"나는 아무래도 가족과 가정을 소중히하고 싶었어. 분명 출장 때문에 미국 연구소로 가느라 집을 비우는 일도 있고 연구자로서의 자신이 가장 생기있다는 것도 자각하고 있어. 그치만 어디에라도 있는 '보통 가정'을 동경하던 것도 사실이었지. 오카베는 그런 나의 소원을 이해하고 결혼하자고 해줬어. 그렇다면 나는 미국 연구소에 대한 미련을 질질 끌지 않고 일본 연구소를 같은 레벨까지 끌어올리는 것에 힘을 다하겠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말하며 미소짓는 오카베 크리스는 이번엔 연구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원스럽게 지금의 인생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얼굴이었다.
굉장히 멋있었다. 넋을 잃었다. 누가 뭐래도 좋은 여자라고 생각했다.
"크리스 씨 멋져요……"
"그래? 고마워"
아, 선수 뺐겼다. 이 녀석은 희미하게 동경하는 눈빛으로 오카베 크리스를 바라본다. 그녀는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더욱 오카베 교수님이 부럽다.
"……어머?"
"에, 뭐, 뭔가요"
갑자기 오카베 크리스가 이쪽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 고개를 갸웃했다. 뭘까, 까치머리라도 되었나.
"뺨에 마들렌 조각이 붙어있어"
"에, 아?! 이, 이런 실례했습니다"
내가 당황하며 입에 손을 대는 것과 동시에 오카베 크리스는 휴지를 꺼내 그것을 나의 입가에 대었다. 꾹하고 부드럽게 닦는다.
"아들이 어렸을 때 같아"
후후, 하고 입가를 동그랗게 만드는 오카베 크리스를 본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부끄러운 것과 가까이에서 그 미소를 본 것 두 개가 겹쳐서 머리가 펑크날 것 같았다. 우아아아아아.
그러나 나의 폭발한 머리 속을 부수듯이
"후우-하하하! 우리 레버멤 예비군이여! 인기 배우 등장!"
쾅하고 세미나실의 문이 열려 젖혔다. 교수님은 터져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 오카베"
오카베 크리스는 내 입가를 닦으며 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뭐냐 크리스, 와 있었네"
네, 라는 말꼬리가 사그라지고 교수님은 오카베 크리스와 그리고 입가를 닦이는 나를 보더니 잠시 진지한 얼굴로 그것을 응시하였다. 그리고 저벅저벅 걸어 이 쪽으로 가까워지자,
"윽"
이런 소리를 내고, 오카베 크리스의 팔을 잡아 그 손에 들고있던 휴지를 꽉 말아 쓰레기통에 던졌다.
"……당신 뭐하는 거야?"
"이것도 슈타인즈 게이트의 선택이다"
"뭐어?"
"그보다 크리스티나, 왜 또 세미나실에 있는 거지?"
"대학으로 갈거란 말은 아침에 했잖아"
"그러나 세미나실로 올 필요는 없겠지"
"뭐야, 내가 오면 방해라도 돼?"
"그건 아니지만……. ……여기 있는 것이 남자 한 명이 아니었다면, 뭐 됐나"
"? 한 명? 뭐가?"
"아, 아무것도 아니다!"
뭐야 무슨 뜻이야, 시끄러워 입 다물라고 했다. 갑자기 눈앞에서 시작된 부부 싸움에 망연자실하면서 아아 나 완전히 말이 따로없다고 생각했다.
"야~"
"응?"
"서른 넘은 남자의 질투는 추악하구만……"
"그래? 많이 귀엽다고 생각하는데"
"……여자의 감각은 알 수 없네-"
나는 오카베 부부의 싸움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거기엔 평소의 교수님의 모습은 없고 '자신의 여자가 다른 남자를 돌보고 있었으므로 매우 불쾌합니다'라고 얼굴에 커다랗게 쓰여있는 듯한 남자가 한 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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